내가 한국인이면서도 몰랐던 것들을 세종사이버한국어과에 들어와서 새롭게 배우게 된 것들이 있다. 우리과 왕언니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한국인이 맞나?’라고 의아해 하면서 새로운 한국어학을 공부해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1학기 때는 한글 자모의 생성원리를 공부하면서 ‘자음’이 ‘닿소리’라 이름하고 ‘모음’이 ‘홀소리’라 이름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것을 배우고 얼마 후에 잠시 초등학교 6학년 학급에 시간강사 나갈 일이 생겼다. 마침 훈민정음 관련 시간이어서 학생들에게 ‘닿소리’와 ‘홀소리’라 명명된 이유를 가르쳐주었더니 이 학생들도 처음 들었는지 한 아이가 '어떻게 선생님은 그런 것까지 아세요?’라고 말한다. 시간강사 며칠 하면서 요거 하나 제대로 아이들에게 알려준 것만으로도 큰 보람이라 생각했다. ‘난 60년 만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아이들은 지금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요렇게 자화자찬을 하면서…….
요번학기에서는 ‘한국어어문규범’에서 내가 지금껏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면서 늘 왜 닿소리 이름이 불규칙적인지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고 무조건 외우라고만 했었는데 이제사 알게 되었다.
2학기에 들어와서 어문규범 첫째 시간에 한글 자모의 이름을 배우게 되었다.
내가 36년 동안 초등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늘 힘들었던 ‘기역, 디귿, 시옷’의 이름이 지어지게 된 배경을 알게 되었다.
한글은 세계적인 언어학자들이 과학적인 언어라고 찬탄하지만 닿소리의 이름을 가르칠 때마다 불편을 느꼈고, ‘기역, 디귿, 시옷’은 ‘기윽, 디읃, 시읏’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왔는데 교수님 강의를 듣고 나니 더 확실하게 하루빨리 ‘기윽, 디읃, 시읏’으로 바꾸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선 11대왕 중종 시절 1527년에 최세진이 훈몽자회에서
곧 기역은 '其役'으로, 디귿은 '池末'로, 시옷은 '時衣'로 적었는데, '역(役)'은 '윽' 대신 적은 것이고, '末(끝 말)'은 '읃‘ 대신 비슷한 발음의 훈 '끝(귿)'을 가진 '末'자를 빌려 적고 '읏'은 발음이 비슷한 '옷'의 훈을 가진 '衣(옷 의)'자를 빌려 적었다는 것이다.
최세진은 우리글자의 이름을 굳이 왜 한자로만 표기했을까?
우리글자로 적으면 될 것을?
물론 최세진도 ‘기윽, 디읃, 시읏’이 더 과학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한자에 의존해 표현하다보니 이두식 표현을 하는 실수를 했다는데 그것을 굳이 불편함을 알면서도 오늘날 우리의 전통이라고 관용적 표현으로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통이나 관습도 늘 더 나은 쪽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후손들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16세기 당시 만해도 아직도 우리글을 업신여기는 풍조와 식자층들은 우리글보다는 한자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문규범’ 과목 교수님 강의에 의하면 1988년 어문규정개정 작업 때도 논란이 있었지만 16세기부터 관용적으로 써왔던 표현이므로 그냥 놔두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지금은 한글이 우리나라 사람만의 글자가 아니다. 세계어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는 “한글은 보편성을 지닌 언어로, 전 세계 소수언어를 보호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르 클레지오는 ‘한글은 훌륭하다. 한글은 말을 빠르게 습득하기 위해 발명한 배우기 쉬운 언어’라고 말했다. 그는 ‘말만 있고 문자가 없는 소수언어를 보존하려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며 ‘모든 소수언어는 한글로 쓸 수 있기에 한글 교육은 분명 세계적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어떤 언어가 다른 언어보다 우월한지 평가하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영역’이라면서도 ‘한글이 영어, 스페인어, 아랍어보다 훨씬 논리적’이라고 밝혔다.(경향신문, 2015.09.17.)
르 클레지오는 지구촌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언어인 ‘세계어’라는 개념을 설명하며 ‘한글’이 ‘세계어’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굳이 최세진이 명명한 이두식 이름인 ‘기역, 디귿, 시옷’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북한은 이미 이것을 ‘기윽, 디읃, 시읏’으로 명명하고 있다고 한다. 한글의 세계화와 남북통일을 대비해서라도 자존심 버리고 더 과학적인 이름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북한이 먼저 그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이 먼저 한 것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은 몹쓸 자존심이다.
진정으로 용기 있는 자는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여러 가지로 밉지만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고수하는 면에서 잘하는 것은 인정해주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세계인들이 한글을 더 쉽게 배우게 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예외 규정 없이 닿소리 이름을 ‘자음+ㅣ ㅇ+ㅡ+자음’으로 통일해야 한다.
이상의 것들은 늘 내가 36년 동안 초등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잘 몰라서 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했었던 것인데 세종사이버한국어과에서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지금은 퇴직을 했기 때문에 학교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요렇게 귀하게 얻은 지식들을 어디선가 써먹어야 할 텐데 두고 묵히기는 아깝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에게 봉사활동을 통해서라도 이 아까운 새로운 배움들을 필요로 하는 그들에게 나누어줘야겠다.
<평생교육사 과정에서 EM비누만들기>
<이태원에서 한국어 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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